철이 철인지라 망년회를 많이 하는 요즘이다.
늘상 보던 사이인데도 망년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나곤 한다.
각자 술 한잔씩 들고 한 해 동안 수고 많았다며
망년회다운 건배도 한다.
그리고는 얼마 가지 않아 여늬 보통 때와 다름 없이
일상의 얘기로 자리를 채운다.
그렇게 놀다가 자리를 뜨면서
"내년에 보자. 연말 잘 보내라. 새해 복 많이 받아라."하면
그게 망년회가 된다.
맨 앞하고 맨 뒤만 망년회인 일상적인 술자리 밖에
되질 않는 요즘의 망년회가 나는 좀 이상하다.
어디 그 뿐인가.
사십줄이 넘은 나이의 오랜 친구들이 만나는 자리인데,
언제나 그 자리의 대화엔 '나'나 '우리'가 없음을 발견한다.
지내는 얘기라고 해 봐야, "잘 돼냐?"가 전부고,
대부분 요즘의 뉴스꺼리나 썰렁한 개그, 술 몇 잔 들어가면
자식 키우는 얘기에, 더 들어가면 여자 얘기, 술집 얘기, 골프 얘기, 카드 얘기, 그러다 잠깐 옆으로 새면 진짜 재미없는
정치얘기로 속에 담았던 열받음을 토해내기도 한다.
그걸 통 털어서 세상 사는 얘기라고 할지도 모른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데 그 속에 정녕 있어야 할 우리가 없다.
이야기의 주체임에도 대화 속에 '너'와 '나'가 없다.
집안의 가장이고, 이 시대를 이끄는 세대라고 하는
이 나라 사십대의 술자리엔 그들이 없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걸 아쉬워했다.
아마도 학창시절엔 운동장 스텐드에서, 교정 벤치에서
청소 다 끝난 교실에서 서로가 서로의 얘기를 많이
했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얘기, 공부에 대한 얘기,
친구에 대한 얘기, 속에 담아둔 고민 얘기 등
말하는 이나 듣는 이가 술이 없어도 진지하고
염병할 입시에 바쁜 중에도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세상에 바쁠 일이 더 많아져서인지,
더 치열해지고 모질게 돼서 그런지
웬만해선 서로의 얘기가 없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부담인지,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우리는 얘기 속에 쉽게 나와 너를 집어 넣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시간은 예전보다 더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너가 아닌 일에 우리는 허망하게 시간을 더 쉽게
써버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올해도 10일 밖에 남지 않았고,
우리는 또 하나의 육신의 나이를 더할 것이다.
그만큼 어쩔 수 없는 수명의 단축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보내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든다는 것을
새해 아침에 다시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왠지 2%가 아쉬운 요즘의 만남,
되도록 우리의 얘기를 많이 하면서
서로를 보듬어 주면서,
적당히 지칠 법도 할만큼 피곤할 친구의 어깨도 두드려줘 가면서
가능하면 나와 너가 있는 대화로
서로의 숨을 돌리고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는 그런 자리는
어떨까.
